추리의 외피, 감동의 속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무조건 읽는다. 그게 내 독서 인생에 있어서 꽤 오래된 진리처럼 되어버렸다. 재미가 있든 없든 일단 가독성이 탁월하니까. 쭉쭉 읽히는 문장, 막힘없는 전개, 그리고 대부분은 재미있기까지 하다. 장담하건대, 80% 이상은 재미있다고 느낀다. 그 많은 작품을 쓰면서 이런 승률을 유지하는 작가는 정말 드물다.
그래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고민도 없이 서점으로 향했고, 망설임 없이 샀다. 그리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
이건 추리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추리적 구조를 지녔다. 이야기의 퍼즐 조각들이 하나둘씩 맞춰지는 순간, 나는 이 책이 단순한 ‘따뜻한 이야기’ 그 이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울었다. 진심으로 울컥했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 마음 한편이 오래도록 따뜻했다.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시간의 틈’
이야기는 한밤중, 빈집처럼 보이는 오래된 잡화점에 숨어든 세 명의 청년 ‘쇼타’, ‘고헤이’, ‘아쓰야’로부터 시작된다. 도둑질을 하고 도망치던 그들은 우연히 폐가처럼 보이는 잡화점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그런데 밤이 깊어갈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어디선가 날아든 편지. 그리고 그 편지에는 고민이 담겨 있다. 더 놀라운 건, 그 고민 편지가 과거에서 날아온 것이라는 점.
예전에 이곳은 진짜로 '고민 상담 편지'를 받던 나미야 잡화점이었고, 이 편지를 쓴 사람은 아직도 이 가게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기이한 경험을 시작으로 세 청년은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쓰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인생을 ‘조언’한다는 기이한 밤을 보내며 그들 역시 점점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읽는 편지 하나하나에는 누군가의 절박함, 슬픔, 갈림길에서의 고민이 가득 담겨 있다. 이야기는 그렇게 편지라는 매개를 통해, 과거와 현재, 타인과 타인을 잇는 구조로 전개된다.
따로인 듯 이어져 있는 사람들
이 소설의 백미는 바로 모든 인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하나의 사연이 별개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 모든 인물이 서로 어떤 식으로든 운명처럼 얽혀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예를 들어, “불우한 환경에 놓인 소년”, “음악에 대한 꿈을 접어야 하는 여성”, “아이를 키우는 일이 두려운 부부”, “봉사 활동에 인생을 건 남자”…
각각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시작되지만 그 끝에는 정교하게 맞물리는 치밀한 구조가 있다. 히가시노는 ‘사건’ 대신 ‘사람’을 추적했다. 이런 방식을 통해 독자는 단순한 감동이 아닌, 구조적 쾌감까지 함께 경험하게 된다.
추리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
히가시노 게이고 하면 떠오르는 건 대부분 살인, 트릭, 과학적 분석, 알리바이 깨기 같은 ‘정통 추리’다. 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달랐다.
사건도 없고, 범인도 없다. 그 대신 있는 건, 오래된 인생의 고민과 그것을 받아주는 누군가의 다정함이다. 기적이란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귀 기울여주는 것, 그의 인생이 흔들리는 그날 밤, 따뜻한 문장을 건네는 것.
그게 진짜 기적이었다.
그리고 독자로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편지를 쓴 사람만큼이나 그 편지를 읽고 고민해준 잡화점 할아버지에게 마음이 갔다.
할아버지의 외로움, 쓸쓸하면서도 찡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실 하나가 참 마음 아팠다. 그 할아버지가 평생 그리워했던 사람, 그 여인이 사실 근거리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 그 둘은 결국 다시 만나지 못했고, 서로를 그리워한 채 다른 길을 살았다.
나는 그 장면이 유독 쓸쓸하면서도 깊게 남았다. 어떤 인연은 정말 그렇게 닿을 듯 닿지 않은 채 스쳐가버리는 걸까. 잡을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을 텐데, 그걸 지나쳐버린 삶이 있다는 걸 너무도 조용히 보여주는 엔딩이었다.
따뜻함은 우연이 아니라 설계였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분명 감동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단지 ‘감동적이었다’는 말로 끝내고 싶지 않다.
이 책이 놀라운 건 모든 따뜻함이, 우연이 아니라 치밀하게 설계된 구조 위에서 가능했다는 것. 히가시노는 추리소설가로서의 능력을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짜는 데’에 썼고, 그 결과는 정말 아름다웠다.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한다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한 권의 책을 건네야 한다면 나는 이 책을 택할지도 모르겠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 조용히 삶을 견디는 모든 이들에게 ‘누군가 당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다’는 기적 같은 메시지를 이 책은 전해주니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결국, 시간을 넘어서서 이어지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만든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나는 그가 다시 한 번 대단하다고 느꼈고, 그의 책을 믿고 펼쳐보는 내 습관이 역시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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