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해석: “나는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저항의 미학
“I would prefer not to.”
“나는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이 간단한 문장이 내게는, 때론 고요한 폭력처럼 느껴졌다.
허먼 멜빌의 중편소설 『필경사 바틀비』는 겉보기엔 소소한 직장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무관심, 인간 소외, 존재론적 물음이 층층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끌어안은 한 인물, 바틀비(Bartleby). 그는 조용한 눈빛으로 우리 모두의 삶을 묻는다.
1. 줄거리 요약: 조용한 직장 속의 불편한 등장인물
이야기는 한 변호사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월 스트리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필경사’—즉, 문서를 베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고용해 일하고 있는 그는 새로운 직원을 찾던 중, 바틀비라는 말수가 적고 온순해 보이는 남자를 채용한다.
처음엔 바틀비도 다른 직원들과 다를 바 없었다. 묵묵히 타자를 치며 일을 잘해냈다.
하지만 어느 날, 상사가 "이 문서 좀 다시 확인해 보게"라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이 말을 시작으로, 바틀비는 점점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되고, 심지어 사무실에서 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모든 요구를 부드럽게 거절한다.
변호사는 당황하지만, 바틀비에게 감정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도 못한 채, 결국 사무실을 옮기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끝내 바틀비는 감옥에서 죽는다. 식사도, 말도, 행동도 모두 ‘거절’한 채, 그는 세상으로부터 사라진다.
2. 바틀비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 것일까?
바틀비는 단순한 게으름뱅이나 무기력한 인물이 아니다.
그의 말—“나는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는, 명확한 ‘거부’가 아니라, 완곡한 단절이다.
그는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기능적 가치로만 평가받는 인간이, 그 가치 자체를 거부한 모습.
그러므로 바틀비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병든 구조를 무언으로 고발하는 존재다.
🌀 그는 반항하지 않는다. 단지, 응답하지 않는다.
그는 고요한 혁명가다.
아무 말 없이도 저항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3. 자본주의 시스템 속 ‘유령’의 출현
바틀비는 마치 사무실 속 유령처럼 존재한다.
그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으며,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도 아무 설명이 없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인간이 시스템에 갇히면서 정체성과 언어를 잃어버리는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바틀비는 “왜 그렇게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모든 질문과 요구를 “나는 하지 않겠습니다”로 일관한다.
그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자신의 내면으로 철저히 침잠한다.
그런 의미에서 바틀비는 자유로운 자일 수 있다.
비록 그 자유는 고립과 죽음으로 향하지만 말이다.
4. 화자—‘선의’를 가진 무기력한 체제의 대변인
소설의 화자는 바틀비를 내치지 못한다.
그는 착하지만 시스템의 일부이기에 바틀비를 구하지 못한다.
이 점에서 화자는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5. “나는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의 현대적 의미
- 누군가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을 권리
- 침묵 속에서도 의견을 밝힐 수 있는 방식
- 무위(無爲)로 이루는 고요한 혁명
이 말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에 질문을 던지는 문장이다.
그는 ‘하지 않음’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지키려 한다.
6. 바틀비는 패배자인가, 승리자인가?
그는 결국 감옥에서 죽는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의 방식으로 살다 죽었다.
그 점에서 바틀비는 패배자이면서도, 가장 순결한 승리자다.
그의 말 없는 저항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번아웃, 무기력, 불안에 대한 하나의 상징적인 대답이 된다.
🔚 바틀비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묻고 있었다.
당신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나요?
누군가의 요구에 자동으로 반응하고 있진 않나요?
세상은 당신을 어떻게 정의하나요—이름으로, 직책으로, 효율성으로?
바틀비는 “아니오”라고 외치지 않는다.
그는 다만, “나는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그 문장 하나로, 그는 우리 모두의 피로와 거절당한 존엄을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