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죽은 자의 침묵이 살아 있는 자들을 심판하는 복수극처럼 느껴진다. 다중 시점 서사와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파고드는 포크너의 대표작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때론 그 침묵이 살아 있는 자들을 가장 처절하게 말한다.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단순한 장례 여정의 기록이 아니다. 이는 죽은 애디 번드렌이 남긴 유언이라는 무언의 복수극</strong이며, 살아 있는 자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파편화된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무대다.
이 책은 복수극이다. 그것도 가장 우아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애디 번드렌의 유언 – 복수인가, 해방인가
소설의 시작은 어머니 애디의 죽음이다. 그녀는 생전에 말이 많지 않은 여인이었다. 오히려 언어의 무력함을 혐오했고, 남편 앤스를 믿지 않았다. 그녀의 유언은 단 하나, “나를 제퍼슨에 묻어달라.” 이 요구는 단순한 매장지가 아닌, 살아온 인생의 부정과 회귀다.
일각에서는 이 유언을 애디의 마지막 복수로 해석한다. 죽어서야 가족들을 움직이게 만든 유언, 그것도 가장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동반한 요구. 이것이야말로 침묵 속에서 실현되는 복수이자, 그녀가 가족을 향해 던진 마지막 질문이었다.
“그들의 고행은 너무나도 고소한 일이었지.”
소설을 읽으며 문득 떠오른 감정은 바로 ‘고소함’이었다. 죽은 자가 되어 돌아누운 애디는 말없이 지켜봤을 것이다. 폭우 속에서 시신을 실은 관이 썩고, 소가 죽고, 가족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무너지는 그 전 과정을. 이 모든 고생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 누구도 진심으로 그녀를 애도하지 않았다. 각자의 목적이 분명히 있었고, 여정은 애도의 의무가 아닌 욕망의 변명이었다.
앤스 번드렌과 의치 – 이기심의 상징
앤스는 아내가 죽은 후 곧바로 의치를 얻고 재혼</strong한다. 그가 여정을 완수한 이유가 단순히 사랑이나 책임이 아님을 소설은 끊임없이 암시한다. "나는 평생 이가 없었다"는 반복되는 말 속에 결핍의 자기중심적 집착이 묻어난다.
‘치아’는 이 소설 속에서 단순한 신체적 메타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도, 슬픔도, 죄책감도 아닌 자기편의를 우선하는 인간 본성의 증거이다.
“내 어머니는 물고기다.” – 죽음의 은유
어린 아들 바다만의 이 문장은 소설 전반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난해한 구절이다. “내 어머니는 물고기다”는 표현은, 죽음을 감당하지 못하는 아이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투영한다.
그는 시체와 물고기를 동일시하며, 말이 되지 않는 감정을 은유로 번역한다. 이는 포크너가 보여주는 상징과 언어의 한계, 그리고 인간 내면의 해석 불가능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낸 순간이다.
죽은 자는 침묵하지 않는다
애디는 죽은 뒤 단 한 장에서 자신의 시점으로 말한다. 그리고 그 한 장은 너무나 강렬하다. 그녀는 살아 있는 이들이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는지, 언어가 어떻게 그녀를 배신했는지를 고백한다. 그리고 그 고백은 복수의 침묵이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어머니를 땅에 묻는 이 여정은, 사실은 위선과 이기심을 땅에 묻는 과정이었다.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우리는 여전히 죽음을 부정하고,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렌즈로 재단하며 살아간다. 포크너는 말한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고.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단지 장례 여정이 아니라, 말과 침묵, 존재와 부재, 공동체와 고립의 경계를 넘나드는 거대한 사유의 여정이다. 지금 이 불확실한 시대에 가장 필요한 성찰의 서사일지도 모른다.
📌 나의 감상
- “이 책은 복수극이다”: 애디의 유언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시험이며 복수.
- “살아생전에도 돌보지 않던 이들이 유언을 지킬까?”: 그들의 여정은 위선에 가까우며, 진정한 애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 “의치에대한 집착은 이기심의 상징이다”: 인간 본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다.
- “그들의 고행이 고소했다”: 아이러니한 심정이지만, 독자는 고통 속의 위선을 응시하며 묘한 통쾌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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